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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굴레 전교구장님 강론말씀 (2026.09.20)

2001년 6월 5일 로마에서 교황 성요한바오로 2세를 대신하여 주님께서 제게 주교직에 부르시는 소명을 알려주신 분은 주교성 장관이셨던 지오반니바티스타레 추기경이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처음부터, 제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곧 비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이의 대주교가 된다는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성보니파시오대교구에 소속된 사제로서, 매니토바에 많은 민족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대교구가 설립된 초기부터 이나라에 새로 들어오는 이들을 환대해온 오랜 전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 이탈리아인, 베트남인, 라오스인, 아프리카인, 남아메리카인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민족사람들입니다. 제가 매니토바에 도착한 첫 날부터, 우리 성보니파시오 지역교회가 지닌 다문화적특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1년 9월 16일 대성당에서 거행된 저의 주교서품식은 이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중언어전례에서 원주민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전통예식으로 신앙을 표현했고, 민간행정기관과 여러 종교교파의 대표들이 앞자리에 자리했습니다. 영성체 예식때에는 스페인어 성가가 불렸습니다. 이 마지막장면은 제가 라틴아메리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미 그때 우리 공동체안에 민족적·종교적차이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사목을 시작한 초기부터 모든 민족공동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분본당의 개척자들이었던 한국인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깊은 신앙으로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당시 약 20가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위해 사제 한 분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어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었던 사제가 매니토바를 떠났기 때문에 자신들이 버림 받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60가정에 이르면, 제가 사제를 찾아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들은 끈기있게 이 도전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저를 찾아 와 공동체 가정들의 최신 명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수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20, 30, 40, 50, 그리고 마침내 가톨릭 신자 가정 60가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 도전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사제를 찾아야 했습니다! 한국인공동체의 이러한 노력은 저에게 한국 가톨릭교회의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가 사제단의 관구장으로 일본을 방문 했을 때, 일본의 주교들은 한국에 교회가 뿌리 내리게 된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웃 나라에서 가톨릭교회가 해마다 수 천명씩 증가하는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기회에 한국 교회의 기원에 관한 아름다운 역사를 간략하게 되새겨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17세기초, 하느님을 찾던 몇 몇 평신도들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용감하고 열정적인 공동체가 생겨났으며, 목자가 없는 가운데 평신도들만으로 1836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해에 프랑스에서 온  최초의 선교사들이 몰래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1839년, 1846년, 그리고 1866년에 박해를 겪었습니다. 103위 성인 순교자 가운데에는 사제이며 열렬한 선교사였던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평신도 사도였던 성 바오로 정하상이 있으며, 파리 외방 선교회의 주교 세 분과 사제 일곱 분도 계십니다. 나머지 순교자들은 대부분 평신도들로서, 남녀, 기혼자와 미혼자, 노인과 젊은이와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피로 한국 교회의 풍요로운 시작을 거룩하게 봉헌했습니다. 이들은 1984년 5월 8일 서울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오늘이 복된 날, 우리는 그들의 전례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제가 없었지만 열정적이었던 위니펙 한국 교우들의 공동체는 제게 그들의 조국에서 시작된 교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인 사제를 찾아 드리기위해 제가 노력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2003년 6월부터 7월까지 유럽을 여행 할 기회가 있었을 때, 이 일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파리의 성 쉴피스회 사제관에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있던 한국인 사제 대여섯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의향을 타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곧 제가 낚시를 시도하기에는 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남의 밭에서 수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로마에서 인류 복음화성(당시포교성)에 찾아 가,한국인 신자들을 위해 사제를 찾는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부서의 사무 총장 주교님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 의장에게 편지를 써서 사제를 요청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로마에서 당시 서울대 교구장이자 한국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니콜라스 정진석 대주교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정 대주교님은 훗날 거룩한 교회의 추기경이 되셨습니다. 그분에게 인류 복음화성이 연락을 취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3주도 지나지 않아 저는 매우 기쁜 답장을 받았습니다. 대주교님은 성 보니파시오대교구에 필립 지재구 신부님을 파견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저는 즉시 2003년 7월 18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Holy Cross 본당의 한국인 가톨릭 공동체를 위해 사제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 드린 제 편지에 신속하게 답변해 주셔서 매우 기뻤습니다. 신부님 가운데 한 분을 저희에게 보내 주시어, 그 분이 동포들을 비롯하여 우리 대교구의 다른신자들을 위해서도 사목할 수 있도록 해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추천에 따라 필립 지재구 신부님을 성 보니파시오 대교구에서 사목 하시도록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이는 귀하의 편지에 명시된 협약에 따라 이루어 질 것 입니다…….”여러분은 첫 한국인 사제를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그 분이 캐나다에 도착한 지 몇 주 후, 여러분은 멋진 흰색 자동차까지 마련해 드렸습니다! 서울 대교구와 성 보니파시오 대교구 사이의 이러한 협력은 20년이 넘도록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현재의 주임 신부이신 박재득 테오도르신부님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제들을 맞이 했습니다. 그들은 차례로 여러분 공동체의 사목을 맡아 왔습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협력으로 그들은 공동체를 성장시켰습니다. 21세기초에 뿌려진 이 씨앗은 이제 ‘한국 순교 성인 본당’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있는 것은 여러분 교회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행위입니다. 여러분의 공동체는 시노달리타스, 곧 평신도와 사제와 주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살아가고 선포하기위해 ‘함께 걸어 가는’법을 배우는 과정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온갖 종류의 전망을 내놓곤 합니다. 앞으로 25년후에도 매니토바에 한국인 이민이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질까요? 이러한 질문이 오늘 우리가 행하는 신앙의 행위를 흔들지는 못 합니다. ‘한국 순교 성인 본당’은 여러분의 조상들에게서 물려 받은 신앙을 증언하는 공동체로 계속 남을 것이며, 여러분은 그 신앙을 열성을 다해 후손들에게 전해 줄 것 입니다. 여러분이 주일마다 이 한국 순교 성인 성당에서 함께 거행하는 성찬례는 보편 교회와 친교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입니다.“ 우리 교황 레오와 우리의 형제 주교 알베르토, 그리고 모든주교와 사제와 부제와 하나 되어, 주님의 사랑 안에서 교회를 더욱 성장하게 하소서.” 참된 희생은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맡은 모든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된 공동체를 봉헌하는 것 입니다. 그러한 공동체인 교회는 바로 하느님의 생명을 반영합니다. 이 신성한 생명안에서 성부와 성자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계시며, 바로 그 성령께서 교회의 교계 구성원들과 신자들을 하나의 몸으로 굳게 결속 시켜 주십니다. 여러분은 저를 큰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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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gong94
ogong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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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에 계셨던 초기 교우분들의 간절함과 그를 살피셨던 에밀주교님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역사적이며 감동적인 강론이였습니다.

다시한번 타국에서 우리말과 우리정서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습니다

공유 감사합니다.

마니토바 한인성당

Holy Korean Martyrs Parish - 한국순교성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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