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이라는 것이 무 한정 끝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아픔이나, 슬픔 고난도 그리고, 주변의 아귀 다툼과 시기 질투 이 모든것을 나는 다 내려 놓을수가 있다. 그렇지만 유독 자식의 문제만은 아직도 내려 놓을수가 없어서 만족하지 못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나 자신을 질책 하면서 주님께서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 해본다.
*비교적 만족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가족구성원의 사망과 같이 정말 안좋은 처지라면 만족할 수 없음. 하지만 이또한 깊은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을것이라 믿음. 바오로사도는 비록 예수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였지만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만족하는 법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배웠음. 지금 나는 복음묵상을 통하여 복음을 배우고 있음. 복음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결국 바오로처럼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것이라 믿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해봤다. 각종 사건사고, 다툼, 외도, 온갖 따돌림 등등 이것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친다. 과연 내가 이런 처지에서도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지금상태의 나는 솔직히 안 될 것같다. 하늘 나라(부활)는 아직 꿈도 못 꿀일이다. 그래도 더 나은 내가 될 수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충실하게 살아보렵니다.
*지금 상태가 만족하다면 만족한 상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이라는 것이 지금 나에겐 완전한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으로 듣다보니 귀가 열리는것 같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여서 만족하다고 느끼고싶다. 부족한것은 하나하나 배워서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한 상태가 가능하도록 노력해 보겠다.
*그간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느꼈었는데, 주변의 자극에 고요한 물 한가운데 돌이 던져진것 마냥 일렁이는 나를 봤다. 문제가 생겼을때 해결해보자 노력의 방법들을 생각하기보다 포기할까를 고민했던 나를 보며 마음의 수련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한번 느낀다. 누군가를 바꾸고자하기보다,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 나를 바꾸려 노력하고 내려놓음이야말로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할수 있는 길임을, 그를 위해 지치지않고 노력해야 하겠다.
*내가 바라는 만족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공간을 두려움, 고통, 슬픔 등등의 다양한 형태로 채워진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상태”의 개념으로 인지하게끔 일깨워 주는 것이 나에게는 기도 인거 같다. 만족과 불만족이 수시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불만족이라는 두려움이 기다릴 때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끝에는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 옵소서” 하고 나의 짐을 주님께 홀딱 맡겨버린다. 그러면 나의 마음의 짐이 훨씬 가벼워 짐을 느낀다. 이 과정은 끊임없이 나에게 일어날 것이다. 문득, 나의 짐을 덜어주시는 기도의 은총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남들보다 욕심도없고 포기도 빠르다.내 선에서 해결할수없는일은 한숨자고 털어버리곤했다.이런 생활습관들이 난 어떤상황에서도 만족할수있다는 합리화를 스스로에게 시켰던것같다.나이가 무거워지니 이젠 어느 예고없는 날의 죽음도 쿨하게 받아들일수있을것같다. 그러나 곰곰생각해봤다. 내게 일어나는 일은 마음을 비울수있으나..이젠 독립하여 제갈길을 잘 가고있는 자식들에게 일어나는 불행을 내가 받아들이며 그것마저 감사히 여길수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없어진다. 무너지지않을까..물론 결국엔 평정을 찾게되겠지만 쉽지는 않을것같다.
고난속에서도 성장할수있게만들어주시는 하느님의뜻을 파악하고 완전히 따를수있는 믿음이 완전하지못한것이다.
좀더 수양이 필요하다. 말씀속의 진리를 좀 더 숙고하고 내 안에서 반석을 만들어야한다.
*어떠한 처지라도 만족한다는것이 어떤 기준이 있는것이 아니라 참으로 쉽지않다. 대부분 만족한 상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을때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내 마음이 어떤 상황이라도 잘 받아들일수있는 준비가 되어있기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잘 살펴보아야한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께 믿음을 내 삶의 중심을 두고 살아보고자 희망을 가지고 오늘 지금 내 상황에 만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