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힘과 영향은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만큼 명확하다. 단지, 실천의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엉뚱한 곳에서 계속 방법만 갈구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든다. 또는, 다짐과 결심으로
무수한 실천의 계획을 나열하다 보니, 정작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헤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한가지만 생각하려 하는 요즘이다 (사실, 그 한가지도 참 어렵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한가지의 선한 실천이 여러가지의 실천 다짐과 결국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실천은, 생각을 덜고, 산만한 주변을 정리하며,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조용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쌓여서, 작지만 단단한 믿음의 초석이 되길 바래본다.
복음에 한처음에 말씀이 계시었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행하심을 믿고 따르겠다는 다짐이다. “가서 사랑을 실천하십시오.”라는 사제의 마침강복말씀처럼 우리의 실천은 사랑을 보이고 주는것일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겠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나를 버리고 매일 내 십자가를 지는것”, 나를 앞세우지 않고 욕심과 이기를 버리는것이 사랑의 실천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이 내가 실천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않을까.
신앙에 있어서 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믿음이 없이 실천만 하는 것도 하느님 사랑을 실천했다기보다는 자신이 인정받기위한 행동일 것 같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성장할 수 없듯이 실천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실천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진정한 하느님 사랑 실천은 내가 주고 싶은 또는 내 기준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고 그리고 그에 합당한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잘 알고 또 이웃을 많이 만나 서로의 진솔한 삶을 나눌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많이 만나 친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조명해 보고 그리고 다른 이의 만남 속에서 몰랐던 주님의 또 다른 모습도 발견하여 나의 믿음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믿음은 실천임을 잘 알고있다. 문제는 이것을 잘 알고있으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결과를 내가 원하는대로 기대하기때문이다. 원하는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는 한것일까? 나태함 많은 핑계들, 부족함을 깨닫게된다. 나 자신을 먼저 살리기위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복잡한 많은것들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내 마음부터 청소하고 무디어지지않도록 살아나야하고 내 몸이 살아날것이다.
실천이라는 것은 꼭 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져 묵상 중에도 '실천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천은 나도 하고 너도 하고 다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왜 나만 실천을 해야하지 하는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항상 좋은 결과가 있기를(제게 유리한) 바라며 제가 편리한 방법으로 실천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결국 어떠한 실천으로 나를 돌아보기 보다 다른 사람을 저의 잣대로 판단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실천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정작 저는 아직도 제 마음 살피기에 급급합니다. 무엇을 바라는 실천은 실천을 한것도 아닐것이며 실천을 안하니만 못하지 않을까...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는 작업과 묵상을 게으르지 않게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실천하며 그 실천이 비록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으며 꾸준함을 잃지 않고 나아갈수 있길 기도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다.
우리가 성경도 안읽고 아무것도 안할때는 믿음이 있는건지 실천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고 지날때가 많다.
아는만큼 믿음의 크기도 바뀌는거같다.
지금은 성경을 읽다보니 나름 듣는마음도 생겼다.
귀도 열리고 마음도 열리공 ...
어찌보면 적극적인 대응도 믿음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거같다.
공동체에 적극적인 참여가 믿음실천의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