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야고 2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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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주님의 명령에 따라 번제물로 바쳤다. 하느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그 믿음을 보여주었다. 어제 주일 미사에서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이 나왔다.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내 생각을 먼저 내세우기보다는 순종하는 것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실천이 쉽지 않은 나에게 얼마전 신부님이 축복미사에서 말씀이 내가 실천할 수 있도록 순종의 의미에 부연 설명을 해 주신것도 같다. 부부는 효율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관계라고 목적지를 향해 함께 돌아갈 수도 있고, 어두움에 함께 있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면서 함께하면 된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도 혼배성사를 해서 함께 죽을 때까지 살기로 한 사람이니, 혼인 후의 삶은 나와 남편이 함께 가야 하는 길이고, 그 과정을 사랑을 바탕으로 가야 한다고,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내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남편의 생각을 함께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니 그렇게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실천이 힘들 때에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생각 해야겠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성장하기란 쉽지않다. 하루중에 한번이라도 너그럽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해주자…내 주변사람들에게 난 얼마나 너그럽고 사랑스럽게 대하며 살고 있나? 를 생각해본다. 난 모든이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매번 같은 일로 화내고 있는 나를 들여다 볼 때가 있다. 하느님께 순종하며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인내와 노력을 좀 더 해야겠다. 주님!! 내안에 성령이 머무르고 있다고 느낄때에도 게으름과 나태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저에게 주소서..
- 신앙인의로서 실천은 많은 것을 할수있는 포괄적인 단어이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실천을 나는 어떻게 지키고 살았으며 앞으로 어떠한 것을 잘 실천할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참 뽀쪽하게 군다, 이유를 모르겠고, 한두번도 아니면서, 그의 언행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런 생각의 개념도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내가 네모의 망치가 돼서 팍 !! 한번 쳐주고 싶었으나, 그리하면 신앙인으로서 또, 말씀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여 , 신앙인의로서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내 마음을 다스리고 다독여서, 네모난 망치는 되지 않게 하는것도, 실천이라고 생각 한다.
- 복음을 말씀으로만 듣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씀도 무슨 소용이 있냐.나는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말씀을 따르고자 하지만 내가 아직은 신앙적으로 미숙하니 용기를 내어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많이 서툴고 미흡하다. 신부님의 꾸짖음에 오히려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때도 있다. 그러나 작은 바람에도 나뭇잎은 쉼없이 움직이듯이 말씀을 듣고 따르겠다고 시작한 이들은 이미 실천을 안하는것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조금씩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님 앞에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런 부족한 내 모습도 주님께 봉헌할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 못한다고 주눅들어 있는 것보다 오히려 실천의 단계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입니다”라는 말은 자주 듣는다. 그래 원래 실천이라는 것이 참 힘들다는 말로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 지내오곤합니다. 근데 정말 왜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 중심의 생각에 사로 잡힌 이기적인 마음, 사랑을 온 힘과 마음을 다하라고 가르치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아직 굳건해 진 것이 아닌 마음의 상태, 나 혼자 해서 변하는것도 아닌데, 뭘 사랑의 실천으로 과연 세상이 변할까라는 회의감들이 들어올 때 스스로 실천을 포기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이 나쁜 유혹을 가져와서 내가 실천하는 것을 조금씩 포기하게 하는게 아닐까요? 일단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큰 계명이니깐 진정으로 믿고 따르면 뭔가가 다른 깨달음을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실천을 해 보아야 이러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사랑의 실천을 쉽게 놓치지 않고 또한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천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에 Homeless center에서 자원봉사한지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반복적인 봉사활동중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 배워 느껴보려, 매주 노력하고 있습니다. 센터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늘 똑같아보였습니다. 무질서, 무책임…과연 예수님은 이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대하라 하셨는지 의아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질서 가운데에서도 질서가 보이고, 사랑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봉사자들의 봉사나, 식사제공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도 있으나, 일부의 사람은 그런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기도 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챙기는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아픈사람, 땅바닥에 누워있는 사람, 우는 사람, 정신적인 이상으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등 그중의 약자들의 음식을 챙기고, 그들이 어질러트린 자리도 스스로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들이 배웠던지, 배우지 못했던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모습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장 가장 가까운곳에서부터 작은 실천을 통하여 나의 마음의 상태가 믿음의 상태로 한 발자욱 더욱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까이 가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배우자, 가족, 직장동료에게 화 안내기, 운전중에 기쁜 마음으로 차선 양보하기등 내 일상 생활에서 가르침을 실천해 볼것을 찾아서 먼저 삶에 적용해서 나를 변화해 가는 노력해야겠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셨을때, 아무런 의심없이 주님 말씀에 순종하였으며,믿음을 행동으로 직접보여 드렸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신앙인 처럼 행동을 안할때가 있었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솔선수범 하여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무슨 일을 할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을 찾아서 행동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들도 하기 싫기에 작은것 부터 하나씩..
- 말씀을 접하면서 강렬하게 새겨주시는 느낌입니다. 믿음만 있는 것은 죽음과 같고 실천만 한다고 믿음이 강한 것이 아닌 믿음=실천 두가지 모두 하느님 사랑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알려주시는 듯합니다. 살아가면서 몰랐던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아~그렇구나”에서 머물지않고 실제적으로 내 삶안에서 그 말씀이 생동감있게 살아움직일 수 있도록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질문을 던져 내 상태를 살피라 하십니다. 나에게.. 내 가족에게..내 친구들에게 내 주변인에게 다가가 배운 사랑을 나누고 좋을때나 힘들때나 서로 함께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인으로.. 그 도구로 거듭나도록 하루하루의 나를 들여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