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복음을 알기전에는 그냥 살았다면.. 지금은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세워놓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하는거지요. 어쩌면 그래도 발로만 주일미사를 열심히 다닌것이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복음을 열심히 듣고 따를수 있는것 같애요. 지금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하느님 말씀이 중요해서 내가 나를 버틸수 있는 힘이 생긴것 같애요. 그래서 하느님이 사랑스러워요~ 내가 웃으며 살아가니 하느님이 나란 존재가 중요할 것 같애요. 왜냐하면 웃고사는 나를 주위의 자매님들이 보고 같이 웃어주고 서로 사랑을 하게 되니까요.
o 하느님이라는 기준이 생기니까 두려울게 없고 그 분을 중심에 놓고 사니 분명히 나에게 중요한 분은 맞는데 내가 그분을 그만큼 가치있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미사에 대해 교육을 받고나니 한 시간 남짓한 그 미사도 제대로 집중 못하고 봉헌했던 내 모습에 반성합니다.
그에비해 주님은 날 많이도 돌보시는것 같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이니 설명은 안된다. 내가 (영적으로)힘들때 참 자연스럽게 당신이 보고 듣고 계심을 느끼게 해 주시더라. 이러니 내가 그분께 참 소중한 존재구나를 느낄수 밖에 없고 결국 힘내서 또 주님 말씀 실천하면서 잘 살아야겠다는 결론이 나더라.
o 신앙에 대해서 또 믿음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끌려 세례를 받았었다. 무엇이 신앙인의 도리인지 깨우치지 못했으며, 매주 미사만 빠지지 않으면 되는줄 알았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울부짖으며 하느님을 찾았었다. 기적으로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면서 하느님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가 되셨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또, 기쁜일이 있을 때도 하느님을 먼저 찾고 감사해한다.
사실, 하느님은 나에게 중요한 분이시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신앙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하느님이 중요한 만큼 하느님께서도 나를 중요한 자식으로 생각하셨으니 살려주시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나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의 뜻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o 주관적 관념론적인 시각으로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 내가 없으면 결국 세상이 없어지긴하지만 여기서도 풀리지 않는것은 그럼 누가 이런 나를 만들었나.. 결국은 하느님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됨. 이렇게 각별하신 주님께서 자기위주의 욕심들로만 살아간다면 그 끝은 파멸일것을 경계하시고 인간이 주님과 같은 고차원의 영혼을 가질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심.
그럼 하느님(창조주)께서는 왜 그리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올바른 진리를 알려주시려는지 나 나름대로 생각해 봄.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언제까지나 서로를 위하고 멸하지 않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까 생각이 듬.
o 1.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한가..' 나는 '네'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의 나의 생활과 마음가짐으로 봤을땐 '아니요'가 맞았다. 내가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살아왔다. 애들도 키워야하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기에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 할 수 있게 만드는 일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해왔다. 그 행동중에 하느님을 믿고 생각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잘 살 수 있게 잘 봐달라고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이지 진정 내가 그분이 온전히 중요해서 해왔던 행동들은 아니였다.
2. '하느님에게 나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바로 '네'라고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산 인생에서 다른길을 걷고 있을때 항상 바른길로 안내해 주시고 소중한 분들로의 사랑을 받으며 어긋나지 않게 보다듬어 주셨다. 힘든 순간마다 갑자기 어디서 나를 보다듬어 주는 분들이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하고 더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o 1. 신앙인의 눈으로, 신앙인의 마음으로 바라봄을 노력 할 수록 이 세상이란 모두를 위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는 나의 신앙적 성숙과 깨달음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모두가 함께 노력해 우리가 있는 이곳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은 늘 나를 깨어있게 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주신다. 이렇게 내 삶의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주시는 아버지가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주님께서 지펴주신 마음속 불씨로 나는 모두에게 드러나도록 나를 태워 주님의 자녀로서 일꾼으로서 내가 가진 역할속에서 두려움없이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할 것이니 이런 귀한 일꾼을 아버지께서 어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으시겠는가.
o 1. 왜 어떤 이유로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한가 물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부모자식처럼 내 힘으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당장의 눈 앞의 일들에 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요술방망이처럼 내가 필요할때 두드리면 나와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고통의 옷을 입고 오심을 알아가고 있다. 고통의 옷을 입고 하느님의 손을 잡고 그분께 모든것을 맡기고 한발 한발 나아가며 하느님과 한 몸과 마음이 되고자 한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2.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할까라는 물음보다 이 물음이 더 생소하다. 하느님을 부모님으로 바꾸어 부모님에게 내가 중요할까라고 질문해보니 훨씬 느낌이 편안하다. 부모님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것처럼 하느님에게 나 또한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집을 떠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아버지에게 나는 소중한 것이다. 내가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처럼.. 내 비록 바닷가의 한톨의 모래알처럼 미비한 존재이나 내 조개 속으로 들어가 진주가 되어볼 것이다.
o 저는 아직 1번,2번 다 잘 모르겠습니다. 창조주께서 창조물을 다 사랑하시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그런 경험들이 부럽고, 체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