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등에 손을 대고 나를 이쪽으로 가도록 밀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가끔 있음. 뒤에서 등을 밀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하느님일 것 같음. 마치 미풍 처럼 하느님은 중요한 대상이 아니라 바람이나 공기 처럼 늘 존재하심.
- - 하느님에게 나는 겨자씨 만큼 만이라도 되면 좋겠음.
- 하느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시고 힘들때는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심. 정말 소중한 분이심.
- - 하느님께서는 내가 죄를 범했어도 아버지가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시듯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분이시기에 나를 필요로 하심.
- 하느님은 나에게 모든 것이라는 마음이 듬. 비록 말이나 행동이 이를 따르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느님의 참자녀로 거듭나기 위해 온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음. 복음 묵상을 하면서 그 시간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아주 귀한 시간이고 실제로 많이 배우고 깨달아가고 있음. 그러면서 주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하심, 희생과 용서를 내 일상 속에서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 자신의 한계에 많이 부딪히기도 함.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음.
- - 하느님께 나는 기쁨이 되고 싶음. 사제의 기도 중에서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라는 문구를 요즘 많이 묵상하고 있음. 나로 인하여 신부님께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마음으로 본당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음. 또한 하느님께 어떻게 해야 내가 기쁨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자비, 용서를 실천하려고 함.
- 하느님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는데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를 살려주셨구나라는 체험을 하게 되었음. 그래서 죽을때까지 하느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분이심.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
- - 하느님께 내가 필요한가: 하느님의 자식이기에 나를 살려주지 않으셨을 까 함.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님께 필요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최근에 묵상 강의 듣고 성경책을 보면서 점점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음.
-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한가? 절대적임. 부모님이 안계시면 내가 태어나지 못하듯이 하느님은 나에게 있어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아버지이심. 나의 나쁜 습관, 나쁜 버릇 즉, 자만심, 나태함, 게으름, 이기심 등이 계속된다면 아버지 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론 이해가 되는데 잘 되질 않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발한발 고쳐보도록 할 것임.
- - 하느님에게 내가 중요할까? 어찌 잘 살지 않았는데 그 자식이 중요하고 이쁘겠는가.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지만 하느님 마음에 들고 올바르게 이웃사랑을 실천한 자식이면 더 이쁜거 당연할 것임. 나도 하느님 아버지의 중요한 자식이 되려면 나의 삶이 긍정적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녀가 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임.
-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한가? 몇년전 어느날 문득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때 하느님께서 나의 소망을 들어주셨음. 그것도 기적처럼.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정말 하느님께서 여기 계시는구나, 정말 날 도와주고 계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하느님을 체험했음. 그리고 매일의 일상에서 천국를 맛보면서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쁘게 살고 있음.
- - 하느님에게 내가 중요할까? 네, 중요하다고 생각함. 왜냐면 하느님 마음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임.
- 나에게 하느님은 중요한가? 나에게 하느님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분이심. 내가 지치고 힘들때 항상 편히 기댈 수 있는 분이심. 10여년을 냉담하고 있을때 지금 신부님 오시면서 상담한 후 성당에 나오게 되면서 난 무조건 신부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다짐했기에 신부님 신앙강의도 빼놓지 않고 다니면서 신부님이 강조하시는 복음묵상도 하려 함. 문제는 요즘 나에게 있음을 알았음. 우리가 신부님 신앙강의로 나눔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누가 한 말머리에 꽂혀서 그 말이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해서 계속 곱씹게 되면서 나눔할 때 화를 내면서 나눔도 복음묵상도 하지 않겠다고 떼쓰고 했음.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음. 하느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신앙인으로 해서는 안될 언행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음. 그 말 한마디에 내 믿음마저 부정하면서 미워하고 나눔을 안하려 했던 나를 바로 반성하게 된 내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음.
- - 하느님에게 내가 중요할까?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느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싶을 때가 있음. 요즘 가끔씩 나의 하루 일과 후에 감사하는 마음과 동료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대했는지 돌아보고 오늘 하루도 신앙인으로 잘 보냈는지 생각하면 행복한 순간이 있었음. 이 모든 변화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나를 신앙적으로 이끌어주려는 분들이 내곁에 있어서 감사함. 때때로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성찰을 통한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면서 살려고 함. 하느님을 닮아 내가 깨달은 사랑만큼 이웃에게 베풀며 살고 싶음. 이렇게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때 하느님에게 내가 중요할 것 같음.
- 나에게 하느님이 중요한가? 중요한가를 물을 필요도 없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 지금 여기에 온 것, 여기에 있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해 주신 것이라는걸 믿음으로서 나에게 하느님은 삶의 목표요 방향이요 지표이며 살아가는 힘임.
- - 하느님께 내가 중요할까? 이 수 많은 사람들중에 하느님은 나를 기억해주실까? 나눔 주제를 받고 2주 넘게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 해야 하느님께 내가 중요할까를 고민했었음. 그런데 복음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음 (사도바오로의 로마서 5.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아 하느님께서 곁에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은 성령을 통한 나의 깨달음으로 당신에게 제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해주시는것이고 당신이 ‘벨라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나의 소중한 딸이란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깨달았음.
- 세례를 어릴때 받았지만 여기 오기 전까지는 나에게 하느님은 없었음. 하느님을 알기 시작할때 여전히 예전 내 생활에서는 하느님이 중요하지 않았음. 하지만 성당 봉사를 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하느님 말씀을 알게 되었음. 지금은 나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신다고 믿고 중요하게 여김. 아침기도, 저녁기도 할때는 물론 함께 계실것이라 믿으며 이제는 복음 묵상할때도 함께 해주셔서 내가 힘들어하고 어려워 할때 성령이 함께 하셔서 힘들어하는 내모습을 위로해주시고 용기와 지혜를 주시기를 나는 바람.
- - 하느님에게 나는 중요한가? 하느님에게 나라는 존재는 일개 아니 셀수도 없는 수많은 먼지중에 그 한톨에 불과한데 가끔은 그 먼지속에서 힘들어 하는 나를 발견하시고 은총을 나눠주시는것 같음. 힘들어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인데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를 매만져주셔 그 속에서 나를 흔들어, 깨우침의 은총을 받게끔 해주시는 것을 느껴보면 하느님에게 나라는 존재가 중요히 여겨 불쌍해 보였나? 그런 마음도 들지만 먼지 한톨에 불과한 나를 그 먼지 속 저 밑에 숨어있는 조그만 빛을 눈여겨 보시고 불쌍히 보여 어루만져 주시나보다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함.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도록 하느님 말씀 묵상 잘하고 그 말씀들, 즉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노력하겠음.
- 나눔: 하느님이 계시는가? 하느님을 믿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해봤지 하느님이 나에게 중요한가? 하느님께 내가 중요한가?라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음. 복음 묵상을 하고 예수님에 대해 묵상해보며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나온다는 깨달음이 있으면서 내가 교만했다는 것을 느끼게 됨. 별것도 아닌 문제로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고 많이 반성했음. 고해성사를 통해 온 마음으로 참회하는 기회가 되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 이번 주일 복음 말씀 중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내게 닥친 시련에서 하느님의 일을 찾으려고 하는 의연함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