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성체성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그대 집 떠남 두려워 마오 구름 불기둥만 믿고 따라가오. 그대 가다가 갈증 허기에 가난한 그대 영혼 상처 나거든. 높이 달린 구리뱀을 바라보오. 갈릴래아 호수라고 그대 바람처럼 잔잔하진 않고 가르멜산 오르는 길은 너른 산책길이 아닌 것을. 넘어져도 임의 자락 놓치지 마오. 그대 나섬은 출가요 새로남 이별 아픔 십자가길. 그분의 부름과 그대의 선택인 것 사랑의 길인 것을. 두려워 마오 그대여 주저 마오 무너져도 놓지 마오. 그대 가는 곳 하늘 마을이라오 참 잘 나섰다오.
1주차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노래는 자신을 주님을 향해 바치려는 수도자들, 사제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제 성화의 날‘ 부르면 좋은 노래이겠다 생각하다가 신부님께서 강론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평신도들도 ’보편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이라구요. 그렇다면 이 노래 가사가 우리 마음에도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대 집 떠남 두려워 마오’ 이 말을 우리가 가진 <편안함을 깨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사회적인 것을 버리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들리시나요? 신앙을 찾아 가는 우리를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바라보고 그가 하느님 옆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초점이 ‘내’가 아닌 ‘상대방’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자신’을 우선시 합니다. 내가 남을 위해 하는 행동은 크게 여기고, 남이 나를 위해 하는 행동은 당연하다 여깁니다. 내가 남을 상처 주는 것은 실수였고, 남이 나를 상처 주는 것은 의도된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이 생각들을 바꾸는 것이 신앙입니다. 남이 나를 위해 해준것에 감사하고 내가 준 상처들을 미안해하고, 남이 낸 상처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런 마음들을 가지면 내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이 결코 아름답고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갈릴래아 호수가 항상 잔잔하지 않고, 가르멜산을 오르는 것이 산책길이 아닌 것 처럼요. 바뀌지 않는 나를 바라보며 자괴감이 들때도 있고, 나만 노력해야 하는 것 같은 사실에 낙담하기도 하고, 혹은 바뀌려는 나를 보며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럴땐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아무죄 없이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바라보며 저분은 어떻게 원망의 마음없이 고통을 받으셨을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주저앉지 마세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것은 사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이 생을 살고 죽어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요.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그 안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느꼈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려는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그러니 변화를 두려워 하지말고 우리 자신을 깨고 나아가는 이 길을 다 같이 축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2주차
순교자들을 보면서 존경하는마음은 잇엇지만 난 왜저런마음이 안들까? 저사람들은 정말기뻐서한걸까? 하는 내 완고한마음을 꺾을수잇을까라는 생각을 많이했었습니다. 저는 이 성가를 듣고 가사와 함께 순교자들의 믿음과 희생을 깊이 묵상하며 그들의 삶을 본받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한 값진 결단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어떤 처지에서 사랑하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사랑하는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할수 있는것이 무엇일까 이사람을 위해서 내가 기꺼이 죽을 수 잇는 마음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순교자의삶을 보여준게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순교하는 자들을 보며 주님께서는 기뻐하셨을까요? 눈물흘려하셨을까요? 주님들에겐 똑같은 자식들이니까요. 그대가 가는 곳 하늘 마을이로다 참 잘 나섰다라는 말은 순교자들이 하늘나라로 기쁘게 나아갔음을 저는 언제쯤 그들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기쁘게 죽을수있을까 생각합니다. 섬기는마음을 주고싶어서 고난과 가난이 선물이 될수있다는것. 순교의 길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약속받은 길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힘들다고 생각하는게 제 삶의 무게가 무거워봣자 예수님이 지셧던 십자가의 무게만큼 무거웠을까요?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겪었던 고통만큼 고통스러울까? 고통 속에서 순교자들은 하느님께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화신것처럼 시도하지않으면 늘지않는다. 해야하는것은 알지만 안하는건나쁘다. 라는 마음을 새기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비록 신앙적으로 흔들림과 고통이 있지만 이길을 지나면 나의 예수님이 그끝에 있을거라생각합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아, 저도 작은 일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작은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우리는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을 묵상하며 그들의 신앙과 결단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보여준 믿음과 희생은 오늘날 저에게 큰 도전을 던져줍니다. 저도 그들처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순교자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3주차
사제들을 위한 노래라고도 하는 이 성가는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며 나아가는 우리에게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붙잡혀 있던 이집트 땅에서 탈출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전 오랜시간동안 광야에서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 참 무서운 분이시고 이들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건지.. 그들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불평하는게 타당하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이 바란 것은 좋은 땅을 찾아 정착해, 풍요로이 사는 것이였지만 하느님은 좋은 땅보다 이들의 완고한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을 보게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간절하셨던 것같습니다.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리뱀을 통해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보게하시고 구리뱀을 보는 이들을 살려주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하느님을 보게 하십니다. 돌아보면 그 광야에서의 시간들이 주님께서 사랑하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가 아니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또한 제 의지로 더 좋은 것을 찾아 교회를 갔고,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캐나다에 왔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삶은 외로웠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로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내며, 연약한 제 자신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의 큰 자아에 가려져 느껴지지 않았던 하느님의 크심을 느끼게 됩니다. 저에겐 길고 어두운 터널 같던 시간이 제 신앙을 다시 일으키고 회복하는 기회를 준 셈이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찾아 갔던 교회에서의 배움은 저를 위선자라 하고 저의 죄를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 배울 수록 잘 되어지지 않는 저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되지 않는 모습을 인정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바꾸기로 결심해 조금씩 실천해볼 때, 성령님을 통해 도우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가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두려워마오, 그대여, 주저마오, 무너져도 놓지마오, 그대 가는 곳, 하늘 마을이라오, 참 잘 나섰다오.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는 이 여정중에 저는 앞으로도 넘어지고, 두려워하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마음 배우며 한발짝씩 나아간다면, 어느새 그 시간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믿음 공동체를 통해, 더 성장한 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각자가 떠나온 곳도 다르고, 노예로 매여있는 부분들도 다르지만, 그대 나섬은 그분의 부름과 그대의 선택인 것, 사랑의 길인 것을, 이라는 가사처럼 하느님이 저희 각자를 부르셨고, 사랑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저희 또한 주님 마음 배우기로 선택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느님 놓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함께 나아가는 우리 되기를 소망합니다.
4주차
저는 성당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주로 제 관점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한 성당은 신앙을 깊게 하려는 장소이며,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바꾸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성당을 다니면서도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그분들이 성당을 다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들의 신앙을 보며 제 신앙도 흔들렸고, 성당에 다닐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가를 듣고 묵상하면서, 저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 역시 남을 재판하고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작은 실천을 통해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제가 진정으로 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이 저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살면서 처음으로,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먼저 다가가, 오늘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하루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루를 마칠 때면, 그날 나눈 대화와 제 행동을 돌아보며, 그들을 예수님, 혹은 하느님의 자녀로 여기며 대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제는 남들이 저를 하느님의 자녀로 여기어 주는 것보다, 제가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며 대했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남들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들의 선한 의도를 먼저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가 묵상을 하면서, 혼자서 남들을 판단하는 생각을 버리고, 남들에게 받은 것에 감사하며,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과 이해를 다시 돌려주려는 노력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5주차
여러분은 지금 하늘마을로 가시고 계십니까? 저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정말쉽고 단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주일미사 나가고, 조금 착하게 살고, 그러면 저는 하늘나라로 갈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짓는 죄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말이죠. 정말 어리석었죠. 저는 살 날이 아주 길다 생각하고, ‘괜찮아 나중애 하면되’ 이러면서 화낼것은 화내고 사람들을 욕하면서 상처를 주곤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든지 오셔서 제 목숨을 가져가실수 있다는거를 까마득히 모르고 말이죠. 우리는 모두 십자가를 지고 하늘마을을 향하여 갑니다. 어떤사람들은 이 길이 맞다 생각하며 반대방향을 향하여 걷고 있을수도 있죠. 지금까지의 여러분들의 십자가길은 어떠하셨나요? 어떨때는 본능에 지배당하여 넘어지고, 어떨때는 쉬고싶은 마음에 십자가를 잠시 내려놓을때도 있을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화가나 분노가 생기면서 제가 지고있는 십자가가 무거워지는것도 생각못하고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화내며 결국 하느님을 향하여 가는 저를 넘어트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면 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털어놓고 회계하여 우리는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과거 자신이 저지를 죄에 얽매여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지 말고, 회계하고 다시 일어나면, 예수님도 함께 그대를위해 십자가를 같이 들어주실거라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험할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처럼 잔잔하지 않은 갈릴래아 호수처럼, 우리의 십자가 길은 쉽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십자가를 지고 버티는지의 싸움인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도 험한 환경과 바람이 결국 당신의 십자가를 떨어트릴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환경들을 저는 유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당가기 싫고 집에서 다른거 하고싶은데’ 하면서 결국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지는 우리가 될수도 있죠. 이러한 모든 시련이 있어도 주저 마세요. 우리가 넘어져도 우리는 임의 자락을 놓지 않으면 됩니다. ’이건안되 나는 아니야‘ 라며 당신을 자책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정말 힘듫겁니다. 잔잔하지않고 산책길이 아닌 갈릴래아 호수와 가르멜산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죠. 예수님과 여러분의 신앙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당신의 십자가를 같이 들어주고 있을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가벼워진 십자가를 들고 하느님의 하늘마을에 다다랐을때, 당신을 위하여 도와주고 기도해준 사람들과, 우리의 곁에서 항상 응원해주셧던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고 활짝웃으며 기뻐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