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위해 난 기도해요 모은 두 손에 그댈 담아요 고단한 그대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전해요 그대를 위해 난 기도해요 작은 촛불에 그댈 담아요 떨리는 그대의 두 눈에 작은 온기를 전해요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무게에 때론 눈물도 나겠지만 그대에게 드리는 나의 마음이 작은 힘이 되기를 그대의 험난한 삶의 길에 내 작은 기도를 드려요 내 마음 전부를 담은 간절함을 드려요 그대의 고단한 삶의 길에 내 작은 기도를 드려요 보잘것없는 이 맘을 모두 그대에게 드려요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무게에 때론 눈물도 나겠지만 그대에게 드리는 나의 마음이 작은 힘이 되기를 그대의 험난한 삶의 길에 내 작은 기도를 드려요 내 마음 전부를 담은 간절함을 드려요 그대의 고단한 삶의 길에 내 작은 기도를 드려요 보잘것없는 이 맘을 모두 그대에게 드려요 보잘것없는 이 맘을 모두 그대에게 드려요
어려운 일이 있을때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도 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사실 저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렷을 적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하느님을 조금 알게 된 이후로는 그분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 나의 것을 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가깝지 않은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느님께 닿을 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괘씸하다고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들어주시기 않을까? 하는 무척이나 저다운 생각으로 하느님을 판단하고 내가 기도 드리지 않는 이유를 합리화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생각이 무척이나 잘못되었다는 걸 이대수 신부님의 청년강의와 기도에 대한 유투브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6장 [올바른 기도]에서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몇부분 추려보자면,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 것이며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구요. 진실되게 대화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 부분이 이대수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는 주님을 알기 위해서, 주님처럼 변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처럼 살기 위해 드려야 한다.”고 하신 부분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란 내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 마음이 그것을 원하는지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이 주님의 뜻과 맞는지 확인하고, 맞지 않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깨닫고 주님처럼 살기 위해 다짐하며 그 다짐을 실천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내 마음이 항상 주님께 향해있기를 바라고 향해있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그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기도라고 한다면 <소중한 사람을 위한 기도>의 노래 가사가 저에게는 단지 입으로 상대의 바람을 청하여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내 모든걸 내어 해주겠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우리가 그렇게 배웠던 ‘사랑실천’ 말입니다.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내 마음 전부를 담아 간절하게 바라고 바란만큼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기도.
말뿐인 기도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몸으로 실천하며 전할 수 있는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보며 묵상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