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인 죽음은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아이들을 육체적으로 볼수없는것,혼자 남아있는 아내가 힘들까봐 걱정되지만, 두렵지는않다. 한국말에 돌아가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왔던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처럼 과연 그렇게 슬퍼해야할 일만은 아닌것같고, 기쁜일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내가죽었을때에 지저분하게 살았다는 말을 듣지 않기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
*이십대에는 몸에 조금만 이상이생겨도 너무 무섭고, 죽음이 두려웠으나, 나이가들면서 아무런 준비없이 느닷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것보다,항상준비하고 바라보는것은 다른것같다. 그래서 유서도 적어두었으며 아이들한테 예전부터 엄마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할것인가에대해서도 얘기해두었다. 하느님을 만날수있는 기회이고,죽음은 하느님을 만나기위해꼭 통과해야할 관문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통해 마지막으로 회개할수있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신앙이 없을때 죽음은 무섭고,슬프고, 모든 것이 끝이고, 좋지않은것이지만, 한국과 달리동네에 묘지가 있는것을보고 죽음도 삶의 일부인 이곳의 크리스챤문화가 이 사람들은 죽음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것에 놀랍다. 영원한 생명을 아직 믿는지는 모르겠고, 신앙인으로서 선한 삶을사는것이 현재나의 신앙적인 삶이지,꼭천국을 가기 위한건은 아닌것같다. 인간이 한계가 있는데,항상같은 죄를 고백하는것이 힘들었다.하느님 나라로,돌아가기위해 늘 회개만하고, 고통에만 있다면 우리를 보시는 하느님이 좋으시지만 않을것 같고, 믿음생활 하며, 행복하게생활하면,하느님도 기쁘게 맞아주실것같다. 나이가 죽음에대해 생각할 나이이고, 이런것을 느낄만큼 살게해주신것에 감사하다.
*한사람의 죄로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지만, 또 다른 한사람을 통해 부활이라는 것을 통해죽음의 고통도 극복할수있어서 감사하다. 단지 죽을때에 받을 육체적인 고통이 두렵고,아직은 남을식구에 대한 걱정이 있는걸보니 삶에 대한 미련이 있는것 같다. 두렵지만 신앙인으로 준비하고 있음이 감사하고있다. 초연해지자 생각하다가도,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아플때, 또 다시 두려워 지면서 준비가 덜 되었구나 생각되지만, 하느님께서 약속하셨으니를잊지않고, 굳은 믿음을 가져야겠다 생각한다. 아직도 내 믿음이 있는지는 잘모르겠다. 내가신앙인임을 믿고, 노력해야하겠다.
*나이가 들수록 주위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많아 지니까, 계속 나도 죽음에 대한 생각잉많고,내가 죽었을때 많은 분들이 슬퍼해주실수있는 삶을 성실하게 잘살았다면 하느님나라에갈수있을것같다.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준비없이 남아 있을 자녀들이 걱정되어,준비를 해두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좋은일을 많이하고, 노력하면 하늘나라에 갈수도 있을것같다.
*나에게 죽음이란 이세상 모든것과 이별하고 헤어지는것이라서 너무 슬프다. 어릴태부터친구와 놀다가 헤어지는것도 이별이라 생각했다. 50이 넘으면서,죽음에 대해 생각하니,잘살고 후회없이 산후에 부끄러움없이 살며,최고의 복은 잘 죽는 복이라 생각한다. 죽음이 없이 산다면에대한 생각도해보니, 안죽을거니, 아무렇게나 살고 미룰것같고, 우리가 죽음을겪어야하고, 삶이 유한하니 의미있게살고 어떻게 살다 죽을까 생각도 할수있는것 같다.
선하게살고,좋은 마음으로 살게 만드는것이 죽음에 대한 의미가 아닐까 한다.
*작년,제작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구의 갑작스런죽음,아버지가 지금 내나이에 돌아가신걸 생각하고 나도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죽으면 아내와 독립하지 못한자식이걱정되고,사후와 지옥에 대해서도 검색해보니, 성직자들은 죽음이 신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라하는데 와닿지는않았고, 자꾸 생각하다보니까, 하늘 나라는 꼭 죽어야만가는 것이아니라 지금 살고있는 순간도 하늘 나라가 될수있다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죽을지는 육체적인 아픔은 상상할수 없지만, 다른 두려움이나걱정들은 없이 죽을수있을것같다.
*지금까지살면서,생물학적으로 살다가 가는육체적죽음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신앙적인 생각을 하고,복음을 보면서 내가 다하지못하고 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들고, 교회오빠를 보면서 남편이 사망했을때 ‘하느님 감사합니다’말하는 부인을보고 저신앙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웠는데, 주님말씀대로 준비를 해두어서 가능한것같았고, ‘주님이 부르셔서 곧갈때가 된것같다고’교황23세 영화에서 기쁜 표정교황요한이 말씀 하신것을 보고, 그런 삶을 살아서 죽음을 맞이하는것이 가장 의미 있을거라는 생각이든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신 은혜와 기회가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가실때까지 느끼지못한 삶이 안타까운 삶이고, 내 주위 교우분들이 나의장례미사를 해주시고, 기억해주시는 죽음을 맞이하고싶다.
* 죽음은 단순하고 막연히두려운것,나에게는 오지 않을것 같이 자꾸 잊음 생각하기 싫고아직도 와닿지는않지만, 누구나 죽는것이니,더 잘 죽기위해 준비해야하고, 죽음이 다가오기때문에, 살아 숨쉬는것조차감사하고,소중하다는 생각이든다. 내가죽는것보다, 남아 있는사람들이 힘들어 할것을 생각하니 고통스럽고,눈물이난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위해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이들고, 눈뜨면 성호경을 긋고 하느님감사합니다를 하고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우리를 가장사랑하시는분이신데, 왜 굳이 죽음을 만드셨을까요 라고 강론하시는것을 듣고보니,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려고, 죽음을 주신것은 아니라생각한다. 잠시왔다가는 현세 삶보다 영원히 다가 올 생명을 더 잘준비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죽음을 주신것같다.
*죽음은 무섭고두렵지만,태어남과 동시에 전제된 사실이기에 있는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잘죽기위해서 충실하게 살아야 겠고, 죽음의 시기가 다가온다면 인정하고,받아들이는자세를 가져야겠다 생각하며,하느님이 보시는 죽음은 잘모르겠지만,나자렛예수를 보니 예수님의 부활로, 한사람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의미가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과부활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어 그를 믿는모든사람들에게 구원의 의미를 보여주는 일이라생각한다.. 하느님을 믿고 따름으로 인해 죽음으로 구원을 받을수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부터, 얼마전까지 너무 두렵고 스트레스받고, 어떤때 숨이안쉬어져서 힘든시간을 보냈는데,신부님과 면담을 통해 복음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으며,구원은 아직은와닿지는 않으나, 그대로 믿음으로써 내마음의 두려움은 없어졌다. 나의 죽음,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을 생각해보면서, 너의 죽음은 당장엔 슬프지만, 곧 다시 만날수있음을 믿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수있고, 신앙인이어서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음에,감사하고, 말씀을 따르고, 어렵지만,죽어야 구원을 받아들일수있으니,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